<한겨례/ 김지숙 기자> 도살 직전 구조된 경주마 ‘늘봄’, 고향 미국서 여생 보낸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비건제주 (221.♡.15.123) 댓글 0건 조회 1,035회 작성일 24-03-10 18:04

본문

도살 직전 구조된 경주마 ‘늘봄’, 고향 미국서 여생 보낸다

김지숙 기자입력 2024. 2. 5. 15:15수정 2024. 2. 6. 10:05
요약보기
음성으로 듣기
번역 설정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애니멀피플]
6년 전 한국에 팔려와 새끼 3마리 낳아
지난해 10월 제주 축협 앞에서 구조돼
미 경주마 기업이 보호 의사 밝혀 5일 미국행
지난해 10월 말 제주시 애월읍 축산물공판장 앞에서 도살 직전 구조된 말 ‘늘봄’이 제주의 임시보호소에서 풀을 뜯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지난해 말 제주에서 도살 직전 구조된 미국 출신 경주마가 6년 만에 귀향길에 올랐다. 북미 최대 경주마 기업이 말의 구조 소식을 듣고 여생을 책임지기로 하면서 ‘고향행’이 성사된 것이다.

5일 국제동물권단체 피타(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와 지역동물단체 제주비건은 지난해 10월 제주시 애월읍 제주축협 축산물공판장 앞에서 구조한 16살 퇴역 경주마 ‘늘봄’이 미국 경주마 기업 ‘스트로나흐 그룹’(The Stronach Group)이 소유한 미국 플로리다주의 경주마 농장 ‘아데나 스프링스’로 가게 됐다고 전했다.

늘봄은 4일 저녁 제주에서 경남 사천 삼천포항까지 배로 이동한 뒤 5일 낮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동 준비를 하고 있는 늘봄의 모습. 단체 제공

스트로나흐 그룹은 북미 주요 경마장 여러 곳을 소유한 경주마 기업으로, 말에게 안전한 경주 문화를 조성하고 약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경주마 복지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 퇴역 경주마들이 제주축협 앞에서 도살 직전 구타당하는 영상을 피타가 폭로하자, 스트로나흐 그룹은 이듬해부터 경주마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늘봄은 2007년 미국 켄터키에서 태어난 암말로, 경주마 시절엔 ‘마이 일루시브 드림’(My Elusive Dream)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현역 시절엔 모두 10번의 경주에 출전했으나 우승하지 못했고, 결국 3살에 은퇴해 번식마로 미국에서 5마리의 말을 낳았다. 그러다 2018년 한국에 번식마로 팔려왔고 2022년 4월까지 3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늘봄은 마지막 낳은 새끼가 젖을 떼자마자 도살 전 마지막으로 거치게 되는 비육 농장으로 팔려갔다.

‘늘봄’은 북미 최고의 경주마 가운데 하나인 ‘엘 프라도’의 딸이며, 2018년 한국으로 팔려와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몸에 주근깨가 많은 늘봄은 아빠와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구조 직전 제주시 애월읍 제주축협 축산물공판장 앞에서 모습. 단체 제공

늘봄의 고단한 삶은 지난해 10월 도살장에서 비참하게 끝날 뻔했으나, 당시 제주에서 퇴역 경주마들의 실태 조사를 벌이던 피타 조사관들과 제주비건 활동가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후 늘봄은 제주비건과 협약을 맺은 제주의 말 보호시설에서 지내왔는데, 이번 스트로나흐 그룹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귀향길에 오르게 됐다.

지난 한 달 동안 출국을 위한 검역 절차를 거친 늘봄은 4일 제주 임시보호시설에서 배로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까지 이동했고, 이날 정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미국 시카고를 향해 출발했다. 이후 시카고에서 다시 육로로 플로리다주 남부 매리온카운티의 경주마 농장 ‘아데나 스프링스’까지 이동할 예정이다.

늘봄은 4일 저녁 제주에서 경남 사천 삼천포항까지 배로 이동한 뒤 5일 낮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활동가들이 늘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단체 제공

늘봄의 귀환이 알려지자 외신들도 미국에서 태어난 퇴역 경주마가 ‘제2의 삶’을 얻게 되었다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에이피(AP) 통신은 1월29일(현지시각) “‘마이 일루시브 드림’의 이루기 힘든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전했다. 앞서 1월8일(현지시각) 미국 주간지 피플도 늘봄의 귀환 소식을 전하며 늘봄이 북미 최고의 경주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엘 프라도’의 딸이라고 보도했다.

구조 이후 석 달 동안 늘봄을 보호해왔던 동물단체들은 한국도 퇴역 경주마들을 돌볼 시설 등을 확충하고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제주는 말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지만 그동안 퇴역 경주마가 여생을 보낼 적당한 보호시설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제주시는 전국에서 손 꼽히는 대형 말 도살장을 운영 중인 반면, 말을 보호하는 시설은 턱 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말 제주시 애월읍 축산물공판장 앞에서 도살 직전 구조된 말 ‘늘봄’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동물권단체 피타와 제주비건이 5일 전했다. 단체 제공

캐시 기예르모 피타 수석 부총재는 “늘봄은 이제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살게 되겠지만, 한국의 수많은 퇴역 경주마들은 여전히 도살장으로 가고 있다”며 “피타는 한국 마사회가 퇴역 경주마 보호를 위한 적당한 정책을 펼 때까지 북미 경마 관련 업체들에 ‘경주마 한국 수출 금지’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