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에서는 동물학대에 대해 강력 대응하고 안락사 없는 유기동물 보호소를 만드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제주는 지금까지 선심성 정책 말고는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적이 없죠. 지사님, 의지를 가지고 과감히 동물권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평화의 섬 제주가 언젠가부터 동물학대의 섬, 동물학대의 온상지라는 오명을 듣게 됐다.
산 채로 땅에 파묻히고, 입과 손이 끈과 테이프로 묶인 채 버려지고, 누군가 화살을 쏴 몸통을 관통당하는 등 올해만 벌써 여러 건의 동물학대가 발생하고 있다.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차에 묶인 채 끌려가고, 둔기로 맞아 버려지고, 아무도 없는 집에 방치된 채 겨우 생존하다 구조돼 세상 빛을 보나 했더니 숨을 거두고 하는 학대가 꾸준히 문제다.
아무리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제주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말 못 하는 동물에 대한 끔찍한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
계속되는 동물학대에 대한 방법은 없는지, 어떻게 하면 동물학대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여 소중한 생명들이 다치지 않게 막을 수 있을지 [제주의소리]가 김란영 제주동물권연구소 대표전문가를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
“건강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한 준비는 우리 모두 충분히 갖췄다.”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물건보다 못한 취급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모든 동물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 김 소장은 아직 제주는 이같이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고 확실히 대답하기엔 부족함이 많다고 했다.
그는 동물학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법원에 가더라도 ‘동물학대’보다 ‘재물손괴’가 형량이 높아 물건에 해를 가한 혐의로 선고가 내려지는 사회라면서 동물보호법과 민법을 손봐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살아있는 동물은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물건처럼 취급받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도 중고 가격에 해당하는 값만 내면 끝나는 상황임을 꼬집었다.
학대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처벌이지만, 하루 아침에 인생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들의 슬픔은 물건을 잃은 것과 같은 처지가 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동물학대에 대한 법적 형량이 낮은 데다 동물 학대자에 대한 ‘피학대 동물 압수’와 ‘동물 학대자 소유권 제한’ 관련 법적 조항이 없는 상황이 너무나 손쉽게 학대를 또 저지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동물을 학대해도 해당 동물을 학대자가 소유하고 있다면 쉽게 압수할 수 없는 데다 소유권을 제한하더라도 다음 날이면 얼마든지 다른 동물을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동물학대 문제는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중범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기 전, 동물을 상대로 시험을 해본 것으로 나타나는 등 동물학대를 자행한 학대범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이에 최근 부임한 임상우 제주서부경찰서장의 경우 ‘동물학대’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준해서 엄중 대처하겠다고 밝히기도 한 상황이다.
김 소장은 이처럼 동물학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도 제주도는 문제의식이 없는지 표면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왔다고 비판했다. 사회 시스템상 가장 약한 분야가 동물권인데, 누구도 제대로 신경쓰고 있지 않거나 선심성 정책만 펼치고 있다는 것.
시민 의식은 높아졌는데 행정이나 제도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늘 사람의 시선에서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니 단편적일 수밖에 없고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김 소장은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단 자연과 생태계 중심, 동물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아직까지 동물정책은 인간 중심이다. 또 다른 시민이라는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공존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지역 사례를 보면 지자체장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펼치는지 볼 수 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개선하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시민들도 협조한다”며 “하지만 제주는 지금까지 그래왔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의지를 가진 도지사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제주에 만연한 동물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요인들을 빠르게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개농장 운영을 눈감아주면서 반려동물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모든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불법적인 모든 것들을 처리해야지만 유기동물을 줄일 대안이나 동물학대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지금의 제주도는 동물정책을 쉽게 내놓고 있다며, 문제를 발생시킨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포함한 정책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건강한 제도만 구축된다면 시민들은 잘 따를 준비가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동물권 정책을 자꾸 뒤로 미루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동물권은 결국 도민들의 삶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평화로운 사회는 동물의 삶의 어떤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 삶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동물 삶이 편해져야 한다. 동물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 삶에 평화가 도래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