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지숙 기자> [단독] 새끼만 낳고 도살장행…미국서 팔려온 경주마 도살 직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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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건제주 (59.♡.46.233) 댓글 0건 조회 1,291회 작성일 23-11-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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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새끼만 낳고 도살장행…미국서 팔려온 경주마 도살 직전 구조

김지숙입력 2023. 11. 7. 12:35수정 2023. 11. 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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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피타·제주비건, 16살 ‘늘봄’ 합동 구조
뛰어난 경주마 생산 위해 번식 내몰린 뒤 ‘폐기’
“말들이 한국서 사형 선고 받는 걸 보는 것 지쳐”
국제동물권단체 피타와 제주비건이 지난 10월30일 제주시 서귀포시 애월듭 제주축협 축산물공판장 앞에서 16살 퇴역마 ‘늘봄’을 구조했다. 사진 단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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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 퇴역 경주마가 제주에서 도축 직전 구조됐다. 유명 경주마의 새끼인 이 말은 한국에 수입돼 3마리의 새끼를 낳았지만, 마지막 새끼를 출산한 뒤 젖을 떼자마자 도살장으로 보내졌다. 4년 전 동물권단체가 학대를 받거나 번식을 위해 새끼만 낳고 도살 되는 은퇴 경주마의 현실을 고발한 뒤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국제동물권단체 피타(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와 제주비건은 지난달 30일 제주시 애월읍 제주축협 축산물공판장 앞에서 16살 퇴역 경주마 ‘늘봄’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한국의 경주마 도살을 조사해온 피타 조사관들과 제주비건 활동가는 지난달 30일 미국 출신 경주마들이 한국에 들어와 경마, 번식에 이용되다 도살되는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나섰다가 도살장 앞에서 대기중인 늘봄을 목격했다. 늘봄이 은퇴 경주마로 도살 예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은 말 소유주를 설득해 일정 금액을 주고 늘봄을 매입했다고 한다.

‘늘봄’은 미국의 유명 부마인 ‘엘 프라도’의 자마로, 2018년 국내에 수입된 뒤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몸에 주근깨가 많은 늘봄은 부마 엘 프라도와 흡사한 외모를 갖고 있다. 단체 제공

유명한 말도 결국은 도살장 신세

애니멀피플 취재 결과, 이날 도살장 앞에서 구조된 말 늘봄은 2007년 미국 켄터키에서 태어난 경주마 ‘마이 일루시브 드림’(My Elusive Dream)으로 확인됐다. 이 말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씨수말이자 경주마 시절 총 상금 575만 달러(약74억6000만원)를 벌어들인 명마 ‘메달리아 도로’(Medaglia D’Oro)와 이복 남매다. 메달리아 도로와 늘봄은 모두 부마 ‘엘 프라도’의 새끼로 태어났다.

늘봄은 2009~2010년 1년간 미국에서 총 10회 경기에 출전한 뒤 경주마에서 퇴역했다. 이후 2011년부터는 번식마로 5마리의 자마를 출산했고, 2018년 임신 상태로 한국에 수입돼 이동 과정에서 새끼를 사산했다. 이후 한국에 도착해 2020년부터 지난 4월까지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으나 마지막 낳은 새끼의 포유 기간(5~6개월)이 지나자마자 비육농장으로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피타는 2019년 은퇴 경주마들의 열악한 실태를 ‘케이-학대(K-Cruelty): 구타와 도살, 한국의 경마산업 조사’를 통해 폭로했다. 해당 영상에는 도살장에 실려 온 경주마들이 직원에게 얼굴을 구타당하거나 좁은 도축 통로에서 다른 말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 등이 포함됐다. 이는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제10조 1항 2호)에 해당해, 당시 축협 직원 2명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5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당시 피타 잠입 활동가들은 2018년 4월부터 2019년 2월까지 10개월 동안 9차례에 걸쳐 경주마 22마리가 도살장으로 실려 오는 현장도 포착했다. 도살장으로 실려 온 말들은 이번에 구조된 늘봄처럼 미국의 유명한 부마에게서 태어난 말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영상에는 메달리아 도로의 자마이자 유명 경주마 ‘송버드’의 형제인 ‘승자예찬’의 도살 직전 모습이 담겼으며, 다리에 붕대를 감고 실려 온 ‘케이프매직’의 경우 부산에서 경기를 마친 지 채 72시간이 지나지 않아 도살장으로 보내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북미 최대 경주마 수출기업인 스트로나흐 그룹(The Stronach Group)은 2020년 8월 한국에 경주마 수출을 중단했다.

폭로 4년 지났지만…“마사회 개선 없어”

이후 한국마사회는 경마·동물복지·법조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말복지위원회를 신설하고, 지난해 1월 ‘경주 퇴역마 복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가이드라인은 퇴역한 경주마가 승용, 번식, 관상 등 제2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적고 있으나, 기본적인 용도 변경과 복지를 책임질 주체가 말 주인(마주)으로 되어 있어 이를 강제할 방안이 없는 것이 한계로 지적됐다.

한국마사회가 말산업정보포털 누리집에 ‘경주마 퇴역정보’를 공개하지만, 여전히 많은 말들이 퇴역 이후 이력이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평균 1400여 마리의 경주마가 은퇴하고 있으며 이가운데 평균 48.4%가 도살 또는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살아남은 말 역시 10% 이상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용도 미정’ 혹은 ‘기타’로 분류됐다.

피타는 2019년 잠입 조사를 통해 도살에 앞서 학대받는 퇴역 경주마들의 모습을 폭로했다. 영상 갈무리

많은 말이 은퇴 뒤 죽거나 자취를 알 수 없게 되는 배경에는 뛰어난 경주마를 생산하기 위해 과도하게 번식에 나서는 말 산업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동물단체들의 설명이다. 한국마사회 말산업정보포털을 보면, 최근 5년간 경주마로 새로 등록된 수는 매해 1200~1500여 마리에 이른다. 이들 중 경마에 적합한 말은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3~5살에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해 승마, 교육, 촬영 현장으로 가게 된다. 이렇게 퇴역한 말들은 절반 가까이가 도살 등으로 죽음을 맞는다. 은퇴한 말을 관리하려면 사료, 훈련, 보호에 매달 150여 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마주들이 부담을 꺼리기 때문이다.

제주비건 김란영 대표는 “한국 경마 산업은 지난 101년 동안 경주마, 퇴역마들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쥐어짜며 이용하다가 폐기하는 일을 반복했다. 현재 퇴역 경주마 보호관리 복지를 위한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재산권 침해라는 경마 산업 관계자들의 항의에 부딪히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말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법안 발의에 반대하며 말 복지를 운운하는 것은 비인도적이며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구조된 말 ‘늘봄’은 제주비건의 협약한 말 생크추어리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단체 제공말 생크추어리에서 평온을 되찾은 늘봄(오른쪽). 단체 제공

캐시 기예르모 피타 수석 부총재는 “우리는 미국의 말들이 한국에 팔려가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을 보는 것에 지쳤다. 한국마사회와 농협은 최근 경기 안성팜랜드와 협약을 맺고 퇴역마 10마리를 선정해 ‘명예로운 은퇴 경주마’ 전시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퇴역마 중 일부를 보여주기식 선전에 활용하는 것으로는 경주마들의 도살장 행을 막을 수 없다”면서 “경주마들의 은퇴기금 마련을 위해 한국마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타는 2019년 경주마들의 비인도적 도살 현장을 폭로한 이후 한국마사회에 경주마들이 경기에서 얻은 상금 3%를 은퇴 뒤 복지자금으로 보전하는 방식의 퇴역마 복지 프로그램을 제안해왔다.

한편, 이번에 구조된 늘봄은 제주비건이 협약을 맺은 제주의 말 생크추어리에서 다른 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낼 예정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